"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학교에서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정신질환이 퍼질 수도 있을까? 이 질문은 마치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최근 JAMA Psychiatry(미국의학협회 정신의학 저널, JAMA Psychiatry)에서 발표된 연구는 이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JAMA는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의학 저널 중 하나로, 심사 과정을 거쳐 검증된 논문만을 게재한다. 이번 연구 역시 수십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연구로, 우리가 정신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정신질환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이 연구는 마치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정신질환이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검증하는 실험과 같았다. 단순한 설문 조사나 일시적인 연구가 아니라, 핀란드에서 태어난 71만 명 이상의 청소년을 오랜 기간 추적하며 진행되었다.
연구진은 청소년들이 9학년(약 16세)일 때 같은 반 친구들 중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이들이 이후 정신질환을 진단받을 확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즉, 같은 반에 정신질환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본인도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단순한 우연을 배제하기 위해 부모의 정신 건강, 경제적 배경, 거주 지역 특성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설계된 연구이기 때문에, 단순한 '함께 있어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닌 실제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밝힐 수 있었다.
친구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 나도 위험할까?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같은 반에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후 본인이 정신질환을 진단받을 확률이 1% 증가했다. 하지만 두 명 이상 있는 경우, 이 확률이 5%까지 증가했다.
특히, 첫 1년 동안 위험이 가장 높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즉, 같은 반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며, 초기에 그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다는 의미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효과가 모든 정신질환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울증, 불안장애, 섭식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에서는 특히 강한 연관성이 나타났다. 반면, ADHD나 조현병과 같은 질환에서는 비교적 낮은 연관성을 보였다.
즉, 감정과 행동이 밀접하게 연관된 정신질환일수록 친구 사이에서 더 강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감정이 전달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친구들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연구진은 몇 가지 핵심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증가: 친구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주변 친구들도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를 더 잘 인식하고 병원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겪는 친구를 보면서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감정적 전염(Emotional Contagion): 인간은 가까운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친구가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표현하거나 우울한 기분을 보인다면, 이를 접하는 사람도 영향을 받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 행동 패턴 변화: 우울증을 겪는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사회적 활동을 피한다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
- 공통 환경 요인: 같은 반 친구들은 같은 학교, 같은 선생님, 같은 지역 환경에 노출된다. 만약 환경 자체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같은 반 친구들이 비슷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결국 친구들의 정신 건강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연구는 정신질환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개별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학교나 사회 차원의 예방과 개입이 필요하다.
- 학교에서의 정신 건강 교육 강화: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조기에 개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또래 집단 지원 프로그램: 친구들끼리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건강한 환경을 조성한다.
- 전문가 상담 활성화: 학생들이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을 때 쉽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마치며
이번 연구는 정신 건강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청소년기는 정신 건강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주변 환경과 관계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JAMA Psychiatry에 게재된 이번 연구는 정신 건강 관리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이를 통해 학교, 가정, 그리고 사회가 함께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출처: Jussi Alho 외 연구진, "Transmission of Mental Disorders in Adolescent Peer Networks", JAMA Psychiatr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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